갤럭시S4 = 충직한 로봇
좀 더 따뜻하고 충직하고 든든한 기계. 내가 신경쓰지 않아도 나를 바라봐주고 보필해주는 존재. 저는 삼성이 갤럭시S4에 대해 설정한 마케팅 포인트를 이렇게 예측합니다.
니맘대로 그렇냐구요? ^^;
물론 이런 예측이 맞겠습니까만은, 삼성의 마케팅 흐름을 쭉 훑다보니 그런 방향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설명을 해보려고 했는데, 삼성의 마케팅의 흐름에 대해서 먼저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겠더군요. 그래서 쉽게 시작한 포스팅이 참 길어졌습니다.
열심히 정리를 하긴 했는데 어떨지 모르겠네요. 좋게 봐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삼성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이야기하는것으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삼성의 절반은 운이었다?
근래 삼성 제품의 기획력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지만, 이는 삼성의 노력 절반과 운 절반이 따른 결과라고 생각이 됩니다.
지금의 기획력의 발판이 마련되기 시작한 시점을 생각해보면, 짧게는 갤럭시S3, 조금 길게 보면 갤럭시S2, 더 깊게보면 보르도 TV부터였던것 같습니다.
삼성의 초기 포르.. 아니 보르도TV |
삼성은 이 보르도TV의 성공으로, '어떻게 보여지느냐'에 대한 시각을 바꾸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디자이너가 임의로 설정한 것인지 처음부터 기획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분위기로서는 전자로 추정이 되긴 합니다) 보르도의 디자인은 단순한 비주얼이 아니라 '선명한 메타포'를 담았다는 것에 더 의미가 있는 듯 합니다.
선과 형태, 균형, 색만으로 순수하게 쾌감을 주는것보다는 디자인에 담긴 의미로서 성과를 거둘수 있다는 발상인데 현대 미술에서 말하는 개념 미술이라는것의 발상과 많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개념 미술가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작품 |
개념 미술의 시작은 마르셀 뒤샹이 '변기를 미술관에 가져다 놓는 개념' 자체가 예술이라고 주장한 것이었는데, 근래엔 좀 더 캐주얼하게 개념을 작품 자체에 담는 것으로 변화한듯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개념을 담는다는 것은 자동차의 앞면을 보고 사람얼굴을 떠올리는 것처럼 간접적이거나 모호한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바로 그것'을 떠올리게 해야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보르도를 보며 '와인잔같은 느낌도 좀 나고..' 라고 추상적으로 생각하게 되는것이 아니라 '누가봐도 와인잔이네!' 라고 할만큼 연상을 확실하게 일으키는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그래야만 의미 충돌의 쾌감이 극대화될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삼성의 휴대폰 기획과 디자인은 어땠을까요? 분야가 달라서인지 이런 보르도의 성공 방법이 곧장 휴대폰으로 옮겨오진 못했던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이폰이 시장을 뒤집어 엎고나서는 이야기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갤럭시S 에 담긴 메타포는 바로 '아이폰' |
아이폰의 위협에 바짝 긴장한 삼성은, 표절폰이라 욕을 먹어가며 갤럭시S를 우격다짐으로 시장에 진입시킵니다. 표절이 법적으로 성립하느냐 마느냐를 따지기 앞서서, 의도적으로 '아이폰' 을 떠올릴 수 있도록 외형과 아이콘과 기능배치를 했습니다.
물론 도덕적인 문제가 있지만, 마케팅 기법을 분리해보면 이것 또한 개념주의적인 발상에서 나온것 같습니다.
스마트폰 안에 '아이폰'의 메타포 자체를 확실하게 삽입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이렇게 까지 할 생각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그만큼 아이폰이 강력하다 라고 느낀게 아닌가 합니다.
그 이후 어느정도 발판을 마련했다고 생각했는지 갤럭시S2에서는 적극적으로 또한번 개념주의적인 전략을 조금 방향을 달리하여 시도합니다.
갤럭시S2 대표 이미지 |
바로 휴대폰 화면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는 것인데, 얼핏보면 별것이 아닌것 같지만, 기능적으로 위젯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자랑하는것 외에도 이 화면에는 정말 많은 것이 담겨져 있습니다.
시간과 날씨, 특히 해와 구름을 크게 그려넣어 스마트폰이 '일상에 꼭 필요한 것'
이라는 의미를 전달했고, 가족의 사진을 담아서 '친근하고 글로벌한 느낌'을 표현했으며, 그리고 그 가족이 휴가를 즐기는 모습에서 '동참하고 싶다'는 의미를 주고, 정보창을 집어넣음으로서 '세상을 보는 창구'라는 의미를 떠올리게 해줍니다.
이 모든것들을 은근하지 않고 명확하게 바로 그 느낌을 전달하도록 직접적인 이미지들을 썼습니다.
상대적으로 다소 답답해 보이기 시작한 아이폰 |
그리고 갤럭시S3에서는 정말 큰 운이 작용을 합니다. 바로 애플이 삼성을 도와줬다는 것입니다.
조약돌로 운을 띄운 삼성 |
삼성이 둥근 형태로 갤럭시의 디자인을 변경한것은 사실 소송전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갤럭시S3출시 당시, '변호사가 디자인한 폰'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돌았습니다.
지금이야 그 디자인이 좋다고 말하지만, 사실 삼성으로서는 그 당시에 둥근 디자인이 '취약점'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둥근것이 좋은것'이라는 개념적 전략을 필사적으로 만들게 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취약하다고 생각한 만큼 더 큰 기획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둥근것이 좋은것'이라는 개념적 전략을 필사적으로 만들게 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취약하다고 생각한 만큼 더 큰 기획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호평받는 갤럭시S3 공식 TV광고
삼성은 '조약돌', '자연이 만든 디자인'이라는 개념과 휴머니티가 강조된 훈훈한 광고등으로 '둥근것이 좋은것'이라는 인식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냅니다.
둥근 모양을 취약점으로 생각했기때문에 '자연'이란 개념을 들여왔고, 그것이 확장되어 '도심속의 휴머니즘'의 개념으로까지 기획이 흐른 것입니다.
그것이 아이폰의 차분한 이미지와 대비되고, 과도한 소송전과 아이폰의 더딘 진화에 대한 비판등이 더해지며 감성이라는 키워드를 갤럭시에게 상당부분 뺏기는 결과를 낳습니다.
상대적으로 차가워보이는 아이폰5 광고
만약 갤럭시가 각진 디자인을 유지했다면 다른 안드로이드 폰들과의 차별화는 다소 약해지면서 이정도의 경쟁력은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즉 동기를 얻었다는것이 삼성에겐 큰 행운이었습니다.
그럼 다음엔 무엇을 할까?
일단 삼성은 갤럭시S3에서 얻었던 동기를 이번에는 얻을 수 없습니다. 즉 허공에서 뭔가를 만들어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그럼 어떤 변화를 또 준비하고 있을까요? 일단 이번 CES 2013에서 약간의 힌트가 될만한 것이 나온 듯합니다.
삼성 S9 TV |
일명 이젤TV라며 출현한 상당히 거부감이 드는 형태의 TV입니다. (전 시제품을 프레임에 걸어둔줄 알았습니다. ^^;)
처음엔 다소 황당했지만, 며칠을 두고 보니 어느정도의 의도를 알 것 같더군요.
일단은 물리적으로 가구없이 설치할 수 있는 TV라는 장점도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 '제품에 인격을 부여한다.' 는 발상이 느껴졌습니다.
이젤에 묶인 TV는 내 맘대로 옮길 수는 있지만, 어디에 있더라도 자신만의 작은 거처를 하나 가지게 되면서 어떤 인격적인 존재감을 느껴지게 하는게 아닌가합니다.
물론 TV에 무슨 인격이 있겠습니까만은, 그것을 떠올리게하는 메타포로서 이젤이 사용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과대한 해석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참에 TV에서 삼성 스마트TV광고가 나오는걸 우연히 보았는데, 그것을 보니 아마 이 방향이 어느정도 맞는것 같습니다.
TV가 보는 세상을 표현한 CF
그럼 이것이 스마트폰엔 어떤식으로 적용이 될까요?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하지만, 삼성은 갤럭시S4에서 분명 기기가 갖는 의미의 발전을 시도할 것으로 보입니다. 스마트폰으로 무엇을 '한다'라는 개념이 아니라, 스마트폰'이' 무엇을 한다. 혹은 내 주변에 어떻게 존재한다는 것을 어필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갤럭시S4 = 충직한 로봇 이었습니다.
갤럭시S4 = 충직한 로봇
친구같은 로봇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아이언 자이언트 |
사실 이부분에서 한참을 쉬며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많은 생각끝에 제가 내린 결론은 따뜻하고 충직한 로봇 이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일단 로봇이라하면 시리가 떠오를것입니다. 하지만 시리에겐 몇가지 문제가 있는데, 이미지가 좀 차갑고, 자신의 인격보다는 사용자에게 '복종하는' 하인과 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사용자의 요청에만 반응하는 시리 |
사용자의 편의를 위해 요청에 반응하는 수동적인 존재인 시리와 달리, 갤럭시S4의 컨셉은 '든든한 친구같은 로봇'이라는 느낌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합니다.
갤럭시S3를 쓰면서 어떤 위로감 같은걸 느낀적이 있는데, 바로 스마트 스테이 기능 때문입니다. 사실 기능 자체로는 별것이 아니지만 내가 기계에 명령을 내리거나 귀찮게 하지 않아도 기계가 나를 "신경써준다"는 느낌을 주는것이 단순히 기능을 넘어선 효과를 내는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것의 발전적인 형태의 기술이 갤럭시S4에 담길것으로 보이며, 또한 앞으로 IT전반의 하나의 큰 화두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기계의 차가움을 없애고 정겨움으로 바꿀 수 있는, 언캐니 밸리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발라드만 계속 히트할 수는 없다
르브론 제임스의 훈훈한 갤노트2 광고 |
만약 제가 예상한대로 갤럭시S4에서 충직한 로봇같은 느낌을 내준다면 아주 성공적일것으로 생각은 됩니다만, 혹시 이미지를 너무 훈훈한 쪽으로 몰고가면 식상한 느낌을 남길 위험도 있어보입니다.
현재까지 삼성의 마케팅 느낌은 발라드 중에서도 계몽적인 발라드, 댄스곡으로 치면 꿈과 희망이 가득한 건전한 댄스곡에 가까운데, 좋은 말씀도 한두번이고, 건전함도 지나치면 지치기 마련입니다.
완벽하게 갤럭시 S4를 마케팅한다면, 충직하고 따뜻하지만 경쾌하고 때론 짖궂은 느낌까지 섞어주는것이 좋을 듯합니다. 물론 고비마다 기대를 넘어주었던 최근 삼성의 흐름을 보면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거란 생각도 드네요. 이번에도 예측을 넘어주기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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